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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 - 여름의 애도

 

어떤 사랑도 기록하지 말기를:이영주 시집, 문학과지성사 108번째 사내 : 개정판 언니에게:이영주 시집, 민음사 차가운 사탕들, 문학과지성사

 

 

 비 오는 밤 슬레이트 지붕 밑에서 어머니는 부서진 날개를 깁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누구의 옆구리일까요. 그때 나는 어머니의 바구니에 담겨 있는 털 뭉치처럼 온몸이 가려웠었죠. 죽은 사람이 두고 간 것인데. 어머니는 중얼거리다 말고 빗물이 쏟아지는 마당을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 모든 발자국이 지워졌습니다. 어두운 자리 하나만 남아서 점점 깊어지고 있었죠. 모든 게 빗길을 따라 흘러가는 것인데. 너의 할머니는 이것을 두고 갔구나. 우산을 들고 어머니는 마당으로 걸어갔습니다. 어머니의 울음을 듣지 못하고 나는 털 빠진 개처럼 옆구리를 긁고 있었죠. 개다 만 빨래가 다시 축축하게 젖어드는 시간. 떠내려가지 못한 날개를 건져 올린 것은 어머니입니다. 찢기고 바스러진 이것을 어떤 자리에서 다 완성할 수 있을까요. 물에 젖은 어머니의 발자국이 천천히 지워지고 있습니다. 슬레이트 조각이 떨어지는 소리. 이 다정한 악몽의 시간에 잠깐 쉬었다 갈게. 죽은 사람의 날개가 모조리 힘없이 부서집니다. 어머니의 등에서 흰빛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나는 그제야 컹컹 웃기 시작합니다. 목이 아프도록. 장대비 쏟아지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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