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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 - 집들이

 

어떤 사랑도 기록하지 말기를:이영주 시집, 문학과지성사 108번째 사내 : 개정판 언니에게:이영주 시집, 민음사 차가운 사탕들, 문학과지성사

 

 

 우리 집에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우리 집에 온 사람들은 모두 창문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한다. 지붕에 걸려 있는 구름의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한다. 나는 커피를 내리고 슬리퍼를 신겨주지만 우리 집에 오는 불꽃 같은 사람들은 목조 주택을 태우고 구름 속에 연기처럼 섞여들고 싶어 한다. 우리 집 안에는 죽음보다 따뜻한 향기가 있어. 나는 재만 남은 슬리퍼를 신발장에 보관한다. 모든 것이 부스러져 밑으로 떨어진다. 구름 안으로 스며들 수 있도록 나는 창문을 열어둔다. 바닥에 앉아 귀를 대본다. 우리 집에 오는 사람들은 우리 집에 온 적이 없는데. 불에 타고 남은 흔적을 모으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창문 밖으로 퍼져나가는 재의 향기. 누군가가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른다. 왜 밖에 서 있을까. 나는 무형의 차를 데우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슬리퍼를 현관 앞에 놓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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