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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 - 독서회

 

어떤 사랑도 기록하지 말기를:이영주 시집, 문학과지성사 108번째 사내 : 개정판 언니에게:이영주 시집, 민음사 차가운 사탕들, 문학과지성사

 

 

 읽을 수 없는 문장처럼 생긴 것들이 가득해. 그는 망토를 벗었다. 눈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나는 손에 든 책을 술집 바닥에 집어던지고 발로 밟고 있었다. 고통받지 말자. 읽고 토하자. 그는 곧 튀어나올 부호처럼 웃으며 내 발을 만졌다. 이렇게 엄지발가락이 튀어 오르니 맨발로 읽어야지. 발바닥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나라에 가보지 않고 그 나라의 불을 피우는 예언자처럼 모든 글자가 타올랐다. 나는 술집 바닥에서 조금씩 커져가는 불길이 되고 있었다. 형태가 없는 것도 녹아서 재가 될 수 있구나. 아무리 불타올라도 차가운 발이 따뜻해지지 않았다. 깊이 들어가면 뭐가 있을까. 불길 한가운데 가장 깊은 어둠 속에 담겨 있는 투명한 얼음. 그 나라에는 얼음으로 불길을 퍼뜨리고 쓰다 만 문장들이 후드득 떨어진대. 울음의 시작일지도 모르지. 그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눈을 비비자 술집의 모든 울음이 테이블에서 타올랐다. 누군가가 그의 발을 잡고 엎드렸다. 이것은 어떤 이의 몸의 조각인가. 도끼가 필요해. 그을린 짐승들이 몸을 뒤틀었다. 아무도 가본 적 없는 외딴 곳. 그 나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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