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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욱 - 늪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이장욱 시집, 문학과지성사 정오의 희망곡:이장욱 시집, 문학과지성사 기린이 아닌 모든 것:이장욱 소설집, 문학과지성사 천국보다 낯선:이장욱 장편소설, 민음사 내 잠 속의 모래산:이장욱 시집, 민음사

 

 

 한 남자가 벌거벗은 채 누워 있어.

 어디에? 우리집 욕실에.

 죽었나?

 죽었다.

 악어는 좋아했나?

 20세기 소년은?

 장래희망은?

 

 나는 잠시 외출했다가 돌아왔을 뿐인데

 난데없이

 인생이 깊은 늪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악어가 된 것 같아.

 깊숙이

 더 깊숙이

 습한 욕실의 보이지 않는 곳으로

 

 우리집 욕실에 죽어 있는 남자는

 아름다운 몸을 가지고 있더군요.

 희고

 차갑고......

 점점 더 부풀어올랐습니다.

 

 시체는 괄호 속에 넣어둘 수가 없다.

 팔이 툭 튀어나오고

 자꾸 혀를 내민다.

 동거냐, 사육이냐, 사물이냐.

 

 나는 갑자기 뛰어나가 대문을 열었다.

 미친 듯이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외치고 선언했다.

 악어의 꼬리가 사라지도록

 시체가 토막토막

 거리로 흩어지도록

 누구나 만져볼 수 있도록

 공기처럼 

 늪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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