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 건조대에 걸려 있는, 허공에서
뒤집어진 무덤처럼 나란히 흔들리고 있는
갈색 브래지어를 옷 속에 숨기고 화장실로 가져온다
까치집인 머리를 털고 옷을 홀딱 벗은 채
거울을 바라보며 후크를 잠근다
평평한 가슴을 지나 허리까지 내려오지만
끈 조절은 할 줄 몰라 두 손을 포개고
고무 동력기보다 글라이더를 만드는 게 더 좋았다
바람에만 의지할 수 있어서
가장 오래 날 수 있는 비행기의 비밀이 궁금해
쉬는 시간엔 뒤에서 말뚝박기를 하는 대신
바닥에 쪼그려 앉아 공기놀이를 하고 있으면
누가 옷깃을 잡아당기고
서 있는 다리 사이에 머리를 집어넣는다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인 돌들을 주워 와도 탑을 쌓을 수 있다
꼭대기에 가장 작은 돌을 올리고 소원을 빈다
손을 잡고 싶었을 뿐인데 우린 같은 성별이라고 한다
더 다가가면 예고된 절교가 기다리고 있다
정글짐에서 아이들은 단 한 번도 마주치지 않는다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보는 세상은
시계탑도 버려진 낡은 운동화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선풍기만 보면 왜 강풍으로 틀고 싶을까
그 앞에 앉아 왜 입을 벌려 목소리를 내고 싶을까
숨겨야 할 표정이 생길 때마다
서랍을 열면
이미 숨겨 두었던 정체들과 마주치게 된다
아직 변성기도 오지 않았어
겨드랑이는 털 하나 없이 매끈하지
물웅덩이에 비친 얼굴이
다른 얼굴들과 마구잡이로 뒤섞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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