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리 - 구겨진 교실

 

 

 

 소꿉 장난감을 버리지 않았다

 

 플라스틱 통 안에

 플라스틱 냄비와 플라스틱 수저와 플라스틱 칼과 플라스틱 도마와 플라스틱 팬과 플라스틱 버너

 꺼내다 보면

 

 가장 안전한 부엌에서 요리하는 기쁨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

 선생님은 이름이 특이하다고

 다른 애들보다 오 분을 더 교탁 앞에 서 있게 했다

 

 힘이 약한 짝꿍이 의자를 책상 위에 올리지 못해

 대신 올려 주면 순식간에 떠들썩해지면서

 걔랑 사귀려면 흰옷을 조심하라는 소릴 들었다

 

 가방 안에 들어 있던 물건이 사라져서

 온갖 서랍과 사물함을 뒤졌다

 

 뒷자리에선 또래보다 작고 마른 나의 몸을 호시탐탐 노리는 것 같았다

 

 복도를 걷다가 다리를 걷어차였다

 개자식아 너 때문에 응?

 말을 더 이어 가진 않았고

 

 내 어깨를 두드리더니

 재밌는 놀이를 알려 주겠다며 일어나 보라고 했다

 앞에 보고 있어 봐

 따라 일어난 친구는 손을 포클레인처럼 구부리고

 사타구니 쪽에 팔을 쑥 집어넣고 나를 들어올렸다

 

 반 아이들의 시선이 허공에 뜬 내 몸을 향해 쏠렸다

 어느새 교실 문 너머 몰린 무리들이 입을 가리고 키득거리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입꼬리들이 나를 천장까지 잡아당기는 기분

 어때? 재밌지? 재밌지?

 

 얘는 지금까지 이걸 찾고 있었던 거라며

 실내화 주머니에서 플라스틱 칼을 꺼내 바닥에 내던졌다

 

 제가 만약 반장이 된다면 우리 반을 구기대회 일등으로 만들겠습니다

 박수와 웃음 사이에서

 아무리 허벅지를 그어도 생기지 않는

 칼자국들

 

 새로 바뀐 짝꿍은

 책상 가운데에 선을 그었다

 

 나는 비로소 중학교에 입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