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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리 - 코러스

 

그 웃음을 나도 좋아해, 민음사, 9788937408991, 이기리 저

 

 

 너는 점심시간만 되면 식당에 가는 대신

 빈 교실에 남아 도시락을 먹었고 나처럼

 매일같이 도서관에 조용히 앉아 있다가 갔다

 

 그리고 너는 내가 걸어 둔 외투에

 항상 자신의 외투를 겹쳐 걸어 두었다

 

 책을 읽다가 문득 고개를 들면

 너는 엽서만 한 수첩에 무엇인가를 적고 있었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들이

 책장을 넘기는 사이사이에 눈송이처럼 떨어져 녹아내리기도 했다

 

 그럴 때면 읽던 책을 잠시 시옷자로 덮어 두고

 옷을 챙기고 나가 운동장 주변을 좀 걷다 들어올까 싶다가도

 

 나의 외투를 뒤에서 끌어안고 있는 너의 외투를 바라보고 나면

 그 자리에서 책을 단숨에 다 읽었다

 

 전화를 받으려고 황급히 나가는 네 뒷모습을 하염없이 쳐다보고

 두고 간 수첩을 집어 들었다가

 가만히 내려놓았다

 

 수선스러웠던 복도에 찾아온 고요 속에서 너는

 차가운 벽에 기대 앉아 두 무릎을 감싸고 얼굴을 푹 숙이고 있었다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동안 눈발은 점점 거세졌고

 마음이 무거워지면 발소리도 따라 낮게 들렸다

 

 나의 외투가 외롭게 걸려 있는 날이 많아질수록

 겨울방학은 가까워지고 있었다

 

 감고 있던 파란 목도리를 벗어

 네가 늘 앉던 자리에 올려 두었다

 

 모르는 목소리를 따뜻하게 해 줄 수 있을까

 

 주머니에

 쪽지 하나가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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