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료가 떨어진 오토바이에 앉아 생각에 잠긴다
오토바이는
이제 그만 가고 싶다
무엇이 부족하다는 건지
알 수 없는 오토바이 한 대가 멈춰 서 있는 동안
수십 대의 버스 소형차 중형차 트럭 들이 지나간다
카페 문이 열렸다 닫히고 사람들이 오가고
와이파이가 잡히고
손 붙들고
손 멀어지고
여전히 잡은 게 없다는 걸
여러분이 알아채는 순간
비가 떨어지고
활짝 열린 우산 아래로 속속들이 지나가고
잊은 것 두고 온 것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간판 아래로 달려간다
비를 긋고
동선이 얽히고
다시 들어가 들어가는 동안
생각에 잠겼다 나오는 동안
여전히 서 있는 오토바이는 며칠 전 울다 잠든 친구의 오토바이로 중고로 사고 중고로 되팔겠다는 친구의 오토바이를 사기 위해 잔고가 바닥 난 나의 오토바이가 되어버린 중고의 중고 오토바이 저절로 움직인다고 오토겠지만 그래도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기다리는 이것은 내가 외국에 나가면 같이 갈 수 없다
외국까지 같이 갈 수 있는 것은 몸에 걸친 모자나 목걸이나 발찌나 새로 새긴 타투로 기분만 내킨다면
같이 갈 수도 있을 것들
에서도 제외될 오토바이를 타고 서울을 누비는 김유림 씨
누비다가 털털
멈춰 버리고
가고 싶지 않아서 멈춘 게 아니라는 김유림 씨
그리고 그런 김유림 씨의 오토바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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