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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림 - 재생 주택

 

[민음사]양방향 (김유림 시집), 민음사 세 개 이상의 모형:김유림 시집, 문학과지성사

 

 

 집 바깥에는 한계가 있다

 1)바람은 언덕을 넘어간다

 2)아버지는 그곳에 가지 말라고 했다

 3)아이는 몰래 해변을 향해 간다

 

 언덕, 그곳, 해변 중 어딘가에 한계가 있다

 

 오늘 2063년 5월 1일

 

 아이는 몰래 해변을 향해 갔다

 바람이 아이의 머리를 감싸 안고 흔들다가 이내 풀어 줬다 아이는

 썼다

 

 - 석양은 불룩한 배낭 속 초코바와 함께 녹아내렸다: 형체 없음, 냉동실행

 

 - 아버지는 그곳에 가지 말라고 했다고 했다: 형체 없음, 화가 나서 씩씩거리며 차고행

 

 - 바람은 속삭였다: 형체 없음, 언덕 너머 바람행

 

 "집 바깥에는 한계가 있다 거기까지 가서 아이는 몰래 

 조개마다 비밀을

 심었다

 

 포악한 새의 왕을 데려와

 언덕을 감시탑으로 삼자

 

 아득한 해안선보다 더

 비밀스런 모래밭이

 존재한다면

 

 안 될 일.

 모래사장 위로

 부서지는 포말까지

 

 볼 수 있는

 늙고 영리한 새 한 마리가 필요하다 그래

 

 한계는 당신들의 것이 아니라고 충고하는 바람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버지는 아이를 무릎 위에 앉힌 채 매일같이 들려주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버지가 일어나서 창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는 동안 아이는 책상 앞에 앉아 일기를 쓰고 있다

 아이는 이제 자야 한다

 

 오늘 2002년 8월 27일

 

 아이는 게 한 마리를 찾았다

 아버지는 아이의 엉킨 머리를 잘라 줬다

 

 오늘 2034년 1월 1일

 

 조심스러 장면을 앞당겨

 상상하는

 남자의

 손이

 둥글게

 말아 쥐는

 재생 장면을

 

 가로채서 도망가는 우리의 개 포치porch 위로 먹구름이 비를 한 차례 뿌렸다 포치, 포치, 어디로 갔니, 울면서 돌아온 아이가 손에 쥐고 있던 건 입을 다문 조개였다 그걸 삶아 먹은 건 누구였을끼요? 아버지는

 

 언덕, 해변, 그곳, 어딘가에 묻혔다

 

 그렇게 일기 쓰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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