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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림 - 프랑스 마레 지구

 

[민음사]양방향 (김유림 시집), 민음사 세 개 이상의 모형:김유림 시집, 문학과지성사

 

 

 2016년 1월 10일

 내가 프랑스 마레 지구를 방문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2031년 2월 11일

 나는 프랑스 마레 지구에 가 본 적이 없다.

 

 커다란 건물 앞에 서 있습니다. 들어서는 문은 여러 개이고, 나온 문은 하나입니다. 미래의 문은 여러 개이고 과거의 문은 하나로 건물은 퐁피두 센터여야 합니다. 퐁피두 센터와 기억은 아슬아슬하게 결합하여 나를 끌어당기고 백지처럼 고요한 거리 위에 나를 뱉어 놓습니다. 어느새 추워진 거리에서 나는 옷깃을 잡아당겨 목을 덮고 길게 자란 머리칼을 묶습니다. 섣불리 걸음을 떼지 못하는 이곳은 낯선 이국의 거리입니다. 들려야 할 단어가 들려오지 않는 이곳은 낯선 이국의 거리여야 합니다.

 

 떨어진 꽁초를 주워 피는 거리의 부랑자를 시작으로 거리는 펼쳐집니다. 금발의 아이가 광장 바닥에 주저앉아 재미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맞은편 노점에서 열댓 개의 테이블을 내놓았고 그중 두세 개의 테이블에 손님들이 앉아 있습니다. 내가 걷는 것인지 거리가 다가오는 것인지 나는 모르지만 이곳은 낯선 이국의 거리 프랑스 마레 지구일 것입니다. 걷는다고 생각됩니다. 걸어서 프랑스 해변으로 간다고 생각됩니다. 프랑스 마레 지구에서 빠져나가는 길이 여러 개인 것에 나는 놀랍니다. 그러나

 

 문은 하나입니다. 하나의 문을 통과해 니스의 해변에 도달합니다. 자갈 해변에 앉아 새벽녘인지 초저녁인지 모를 빛 속에서 일기를 쓰고 있는 그가 보입니다. 그리운 단어가 백지 위에 부딪히는 이곳은 분명 낯선 해변이어야 하는데.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에 자갈 소리가 절걱입니다. 왜인지 밀물은 없고 그는 나를 돌아보고 나는 어리거나 늙었고 다정하거나 잔인합니다.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 싫은 이곳은 낯선 이국의 거리여야 합니다. 전부 여기서 끝나야 해요.

 

 문을 폐쇄하고 돌아가지 마세요. 돌아가지

 마세요.

 

 왜인지 내가 그를 붙잡지만

 돌아갈 것도 나이고

 돌아갈 거리를 엉망으로 이어 붙인 것도 나인데

 

 그는 Je t'aime 말합니다. 

 아닐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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