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른 풀장 한가운데로 수영해 들어간다
사람이 많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다
뛰어들 수도 있고 발부터 적실 수도 있다
낙엽이 떠다니는
버려진
풀장일 수도 있고
내가 꿈꾸던 바로
그 호화 수영장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바람에 쏟아진 낙엽으로
얼룩진 풀장도
꿈의 가장자리 정도는 적실 수 있다
레인 끝까지 가려면
물안경이 필요하고
긴 머리칼을 묶을 머리끈도 필요하다
가족과 함께 왔을 수도
친구들과 함께 왔을 수도
시시하게 너와 함께 왔을 수도 있다
가장 시시한 건 나 혼자 왔을 때다
가장 시시하지 않은 것도 나 혼자 왔을 때다
만약 이것이 기나긴 불화 끝에 화해한
부부의 여행이라면
초가을에 큰 타월을 두르고 팁을 주어 가면서까지 샤베트를,
서로의 입에 떠먹여 줄 테니까
시간이 길다는 건 상대적인 거니까, 순식간에 만나고
헤어진 하룻밤의 풀장일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감각 속에서
수영장은 깊이를 모르고
넓어져서 나는 한가운데를 찾아
나와 함께 소용돌이치는 것 같다
이 바닥은 매우 쓸쓸하고 매우 차갑고 매우 단단하다
어이, 누군가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
나는 눈을 뜨지 않고 수영해 들어간다
들어가도 들어가도
기껏해야 초호화 감기에 걸릴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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