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창문을 열었을 때 자연은 그대로였다 푸른 바다
면도기가 녹슬었다 열어 둔 창문 너머로 그것을 던졌다
그대로 바다에 떨어졌다, 당장 가져 와
화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림 한 점이 침대 맡에 걸려있다 컬이 인상적인 가발을 쓰고 그림 속 사람의 얼굴은 오후의 빛으로 빛난다 드러난 발가락엔 새가 한 마리, 부리를 박고 머리를 부빈다 가까스로 미소 지을 줄 아는 새처럼 미소 짓는 얼굴을 나는 그렸다 그는 자기 인생의 발치를 간질이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날
내가 이불 밖으로 두 다리를
꺼내 놓았을 때
바닥엔 낡은 실내용 슬리퍼 두 켤레
개의 비듬, 자기 전 코를 풀고 탁상에 올려 뒀지만
떨어지고 만 휴지가 있었다 나의 두 다리는 덜렁이는
낡은 슬리퍼를 꿰어 신고 창가로 갔다 파도가 일렁이고
창문틀을 손가락으로 문지르자
소금이 묻어났다 섬이 여러 개 보였다 얼굴이 보인다 당장 가지고 와 정면에서 나를 응시하는 그가 보인다 창문과 나
사이에서
손끝에서
하얀 결정이 녹고 있었다
그가 물러섰을 때 바다는 파도를 밀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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