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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형 - 습관

 

숲(ㅅㅜㅍ):김소형 시집, 문학과지성사 좋은 곳에 갈 거예요, 아침달

 

 

 옛날 옛적에......

 

 모든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옛날 옛적에 괴괴한 마을에서 길을 잃었다

 시커먼 온몸에 몽글몽글한

 머리 마구 솟아나는

 소설을 생각하던 참이었다

 낯선 곳에서 그림자는 불쾌했는지 거대한 광물로 변해 있었다

 나는 작은 소금 기둥처럼 붙은 채 쩔쩔매며 헤맸다

 그리 옛날도 아닌데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늙어 있었다

 그들은 내게 삶은 감자를 건넸는데

 분명 소설 속 여자 머리를 씹어 먹는다면 이런

 퍽퍽한

 맛일 거라 생각했다

 사람들이 모두 옛날 옛적에를

 경구처럼 외우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소싯적에 멋진 그림자 없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하도 닳고 닳아 이런 거라고

 내가 움쩍하면 아직도 기이한 소리를 낸다고

 

 잘도 떠들어댔다

 

 그림자 파편이 만물에 내리던

 그리 오래되지 않은 날들이 있었다

 몸은 살로 덮여만 가고

 눈 감아도 자꾸만 음푹 파인 웅덩이가 보였다

 순간순간 선명하게

 

 귀 눈 코 입 코 입 눈 귀

 

 매일매일 웅덩이와 마주치며 살았다

 그러니까 옛날에 인간들은 서로를 향해 주먹질을 해댔다

 그림자는 발에 툭툭 차이면서 마구 발길질을 당하거나

 떠돌아다녔다

 서로가 어디를 뚫는지도 모르면서 마구

 휘갈겨댔다

 무서운 게

 얼마나

 

 떠오를지 모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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