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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형 - 깊은

 

숲(ㅅㅜㅍ):김소형 시집, 문학과지성사 좋은 곳에 갈 거예요, 아침달

 

 

 허기진 아이는 썩은 과일 물고

 난간에 올라

 내장이 터진 새들을 쫓는다

 쉴 곳 없어 몸을 움츠린 채

 창가에 매달려 있으면

 사람들은 그들을 걷어 옆집 옥상에 올라가

 살그머니 빨랫줄에 널어놓지

 아스라이 솟은 지붕에다가 몰래 올려놓고

 콧노래 부르며 그 광경이 보기 좋은지 한참을 바라보네

 

 언제였을까

 내 입에서 작은 손이 솟아 온몸을 꿰뚫었는데

 귀찮아서 힘껏 뽑아버렸더니

 그 구멍에서 아이들이 자꾸만 태어났어

 떨어져나간 손은 지금도 내게 기어와

 정신없이 아이들을 끄집어내고 있는데

 그걸 아무리 말해도 사람들은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요,라며 화들짝 놀라고

 시치미 떼며

 자상하게 입에 낡은 기도문을 물려놓는다

 저기 앉아 놀고 있는 아이를

 어떻게 할까 즐겁게 생각하면서

 어떻게 해볼까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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