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의섭 - 예후

 

 

 

 내가 잠깐 눈을 감았을 때

 두 번째 달이 생기고 기린은 노래하는 나무가 되어 걸어가고

 다시 잠깐 눈을 감은 사이

 날개 달린 인류가 나타나고 아파트는 궤도를 따라 떠다니고

 사막의 모래는 은하계의 모든 별을 거쳐 온 음악을 따라 부른다

 

 *

 

 물 위에 뜬 연꽃 날개 펼친 나비 강물에 번지는 물안개

 새로 깔린 보도블록 담장에 그려진 거대한 해바라기 줄지어 걸어가는 유치원생들

 터널을 빠져나온 기차 출구로 쏟아져 나오는 승객 석양을 삼킨 아스팔트

 나는 방금 전 나타난 것처럼 이 거리를 걷고 있다

 내가 아는 사람들이 하나씩 생각나고

 내가 아는 사람들이 한 명씩 죽었다

 목격자를 찾는 현수막 잃어버린 아이를 찾는 전단지 일할 사람을 구하는 무가지

 아침에 산에 올라가 내려오지 않는 등산객 잠이 들자 다시는 깨어나지 못하는 식물인간

 연기 없는 화장터 끊임없이 지저귀는 이름 모를 새 아침마다 눈 뜨는 환자들의 병원

 내가 잠깐 눈을 떴을 때

 

 *

 

 오늘 하루는 경과가 좋아서 곧 비가 올 것 같습니다

 당신은 어디로 사라졌다 다시 오곤 하는 건가요

 

 어디서부터 오는 비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