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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의섭 - 머리카락

 

어디서부터 오는 비인가요, 민음사 묵시록:윤의섭 시집, 민음사 마계, 민음사 내가 다가가도 너는 켜지지 않았다, 현대시학사, 9791186557853, 윤의섭 저 붉은 달은 미친 듯이 궤도를 돈다, 문학과지성사

 

 

 차 한 대 없는 국도의 어두운 점막을 찢으며 전진 중이다

 

 물만 줄 뿐인데 내리 가지가 돋는 행운목은 괴기했지만

 비좁은 베란다에 어머니는 더 큰 화분을 들여놓고 싶다고

 

 뒷좌석에서 무성한 잎을 흔들며 웃고 있는 나무

 

 화원에서 출발한 시각이 떠오르지 않는데

 그새 더 자랐는지 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머리카락이 자꾸 눈을 가린다

 

 행운이라는 희귀종을 몇 그루나 만져 보았나 그걸 따지고 앉았으니

 한심하다 안개마저 꼈고 어느새 여기까지 온 걸까

 귀하다는 행운목 꽃을 보았으니 나도 웃고 넘어가야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했지만

 

 모든 유예는 이미 끝 이후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생신 잔치 가는 길에

 무덤가에 저렇게 예쁜 꽃이 피었네

 중얼거리는 어머니 말씀이 차창 밖에서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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