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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부코스키 - 시간의 바닥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민음사 호밀빵 햄 샌드위치:찰스 부코스키 장편소설, 열린책들 창작 수업, 민음사 글쓰기에 대하여, 시공사 사랑에 대하여, 시공사

 

 

 시간의 바닥에

 도사린 것은

 고부라진 담뱃대

 빨간 기차

 셋집

 바짝 튀겨진 우울.

 

 시간의 바닥에

 도사린 것은

 당신이 합창하는 노래

 다락방의 쥐

 빗물이 흐르는 기차 창문 

 위스키 냄새가 나는 할아버지의 숨

 모범수의 덤덤함.

 

 시간의 바닥에

 도사린 것은

 어리석어진 유명 인사

 흰 페인트칠이 벗겨진 교회들

 하이에나를 선택한 연인들

 퇴화를 깔깔 비웃는 여학생들

 자살자의 밤바다. 

 

 시간의 바닥에

 도사린 것은

 마분지 얼굴의 단추 모양 눈

 도서관에 빽빽히 도열한 사망한 책들.

 

 시간의 바닥에

 도사린 것은

 문어

 겨드랑이를 면도하다 발광하는 글로리아

 패싸움

 휴지 없이 갇혀 버린 기차역 화장실

 라스베이거스 가는 길에 펑크 난 타이어.

 

 시간의 바닥에

 도사린 것은

 여자 바텐더가 완벽한 여자이길 바라는 꿈

 전무후무한 홈런

 문을 열어 놓고 화장실에 앉아 있는 아버지

 장렬하고 신속한 죽음

 놀이공원 유령의 집에서 벌어진 윤간.

 

 시간의 바닥에

 도사린 것은

 거미줄에 걸린 말벌

 말리부로 이주하는 배관공

 어머니의 울리지 않는 초인종 같은 죽음

 현명한 노인의 부재.

 

 시간의 바닥에

 도사린 것은

 모차르트

 시급보다 비싼 형편없는 패스트푸드 식당

 화난 여자와 기만당한 남자와 시든 아이들

 집고양이

 황새치 같은 사랑.

 

 시간의 바닥에

 도사린 것은

 홈런에 환호하는 1만 7000명

 텔레비전 코미디언의 뻔한 농담에 웃는 수백만

 지긋지긋한 사회복지관 대기 시간

 뚱뚱한 미치광이 클레오파트라

 무덤 속 베토벤.

 

 시간의 바닥에

 도사린 것은

 파우스트의 지옥형 그리고 성교

 여름날 거리를 헤매는 개의 처량한 눈빛

 마지막 장례식

 다시 추락하는 셀린

 상냥한 살인자의 단춧구멍에 꽂힌 카네이션.

 

 시간의 바닥에

 도사린 것은

 젖으로 얼룩진 판타지

 지구를 침공하는 우리의 추태

 쥐약을 마시는 채터턴

 헤밍웨이를 죽였어야 하는 황소

 하늘의 여드름 같은 파리.

 

 시간의 바닥에

 도사린 것은

 골방 안의 미친 작가

 졸업 파티의 허영

 보랏빛 족적이 찍힌 잠수함.

 

 시간의 바닥에

 도사린 것은

 밤에 울부짖는 나무

 아무도 찾지 않는 장소

 나는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새파란 청년

 나는 생존할 수 있다고 믿는 중년

 나는 피할 수 있다고 믿는 노년.

 

 시간의 바닥에

 도사린 것은

 새벽 2시 30분

 그리고 끝에서 두 번째

 그러다 끝이 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