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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정 - 고양이 무덤

 

아무도 모르게 어른이 되어:박은정 시집, 문학동네 밤과 꿈의 뉘앙스:박은정 시집, 민음사 [도마뱀출판사]흥청망청 살아도 우린 행복할 거야 - 문예단행본 도마뱀, 도마뱀출판사

 

 

 내 고양이가 죽으면 어떤 무덤을 만들어줄까

 밤은 길고 낮은 멀리 있으니까

 

 죽은 자들의 무덤은 너무 좁고

 산 자들의 재앙은 예상할 수 없을 만큼 넓다

 

 매일 밤을 사라지지 않으려고 뼛속까지 버텼어

 

 언젠가는 화장터 앞 벤치에 앉아

 오래 하루를 보냈다

 

 말할 수 없는 이유들을 잊으려

 이유 없는 말들을 지껄이고 있었다

 검은 사람들이 나를 지워줄 때까지

 

 단풍은 붉고 푸르고 흔들린다

 갈라진 심장을 가진 자는

 자꾸만 뒤를 본다

 

 완성되지 못한 문장이

 유언으로 어울린다는 사실을

 죽은 자들은 견딜 수 있을까

 

 고양이는 가장 편안한 자세로 누워

 밤의 울음을 길게 운다

 

 망각이 자라는 자리에는

 풀 두어 포기

 

 밤새 팽이는 돌고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계단을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