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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기도 후
아무튼 사과를 깎아주려는 부모님의 태도와 같이
인간과 밀은
잠깐 지나는 비에 기대어 반성을 했다
비는 상냥함과 과분함 사이사이에 검고 희게 펼쳐져 있었다
낮은 층에 사는 친구를 사귀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하층의 아이들에게 나는 공군기지였고
비행기였던 아이들은 팔을 벌리고 내 등 위를 달렸다
동료 같았던 기나긴 이륙
뭐랄까 이제는 신발끈을 목에 감는 기분으로
아주 천천히 어두워지는 시간에 바늘의 정각을 맞춘다
이사철에만 꿈꾸는 완벽한 집과
멈추지 않는 걸레질은 오랫동안 도돌이표를 나눴다
세상의 모든 악몽을 그녀들로 편애하는 날
유언집행인은 또 한번 죗값의 동화를 읽는다
결별은 반성의 위치가 될 수 있을까?
아직도 어색한, 사색의 이러한 싸움들
장례식장의 피아노를 결혼식장의 피아노로 옮기기 위해
나쁜 의미로 누구든 네 개의 발을 가지고 태어났다
저녁이 왔다 저녁이 네 발로 우리에게 온 것은
저녁의 불운이다
검은 밤 뒤의 흰 밤
음악실에서 뺨을 맞고
영원할 것처럼 누르고 있었던 가장 긴 C
북서풍의 맛
기껏 밤의 맛으로
흉수들은 특히 내게 다정히 혀를 내밀었다
말라가는 침 위에
이제는 내가 당신을 잊고 있다는 바다만이 고요히 남아 있습니다
천칭자리에 무게가 같지 않은 두 무릎을 대보는 날
'당신은 긍지 없는 나야'
이런 마음을 전하기 위해
침대는 아름다운 밤이라고 생각한 네 개의 다리 밑에 마음을 숨기고
긍지 없는 길에 부스러기 엄마들을 떨어뜨려주었다
그걸 줍기 위해 무죄한 소년이 네 발로 땅에 쏟아지고 있었다
조용히 소독되는 기적
머리 막힌 사마귀의 계절
기도가 충치처럼 흔들리고 있으니
메아리로 돌아오는 내 고백에 포충망을 걸고
모기약을 뿌릴 테다
아니면
밤을 태우고 촛농으로 귀를 빡빡 씻을 테다
항상 구름을 떠나보내는 건
집사 생활기 속 어디로도 돌지 않는 풍향계 따위
검게 탄 한밤의 심지가 하염없이 하루 위로 돌아오는 것 따위
북서풍의 맛
기껏 밤의 맛으로
천장에 깊이가 다른 손가락을 묻는다
버려진 양수책상과 편수책상의 손잡이를 저녁은 처량히도 비틀었다
몹시도 바깥은 해로워서 온몸에
미리 상처를 발라야 했지, 살 틈에서 들려오는 노래보다
더 넓은 폭의 건반을 이루려고
대개는 사라진 것들이 그런 식으로 그립다
검은 건반의 맛
기껏 흰 건반이 뒤집힌 맛으로
까마귀와 창밖이 밤새 되새긴 새로운 절망은
계절이 자기들에게 짖고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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