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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호 - 숙주의 예절

 

천문, 창비 저녁의 기원:조연호 시집, 최측의농간 유고:조연호 시집, 문학동네 암흑향, 민음사

 

 

 항아리는 주둥이뿐인 자기 얼굴과 마주하는 아홉살을 살았다

 딸의 가루를 단지에 옮겨담으며

 추한 풀밭 모습을 한 어떤 분이 그분의 할머니와 함께

 이제 열살이 조금 넘고 있었다

 

 염치없는 표정을 만들어 우리를 즐겁게 해주던 주정의 세계

 하늘에 붙들려 내려오지 않는 인간의 피를 위해

 허공은 하루에도 몇번씩 실핏줄이 터졌지

 

 버스정류장 휴지통에 꽂혀 있는 담배들 중 하나가 나이기도 했다

 뛰어날 수 있을까?

 아이들은 병따개처럼 거품으로 차오르는 하루를 열기 위해 기다렸지만

 

 화첩 속의 우리는 표본의 세계와 같은 둘레

 만지면 전생애가 담긴 더듬이가 사소하게 떨어질 것이다

 눈부신 캐치볼 그리고 재치에 가까운

 후회의 저편

 

 그네는 결별이 없는 놀이를 눈부시게 의문한다

 말없는 엄마가 저녁을 망치고 있었다

 

 잎사귀 끝을 짐승의 머리로 장식하고

 너의 장탄식과 귀중한 한 개의 숙주를 맞바꾸는 시간

 몸 위에 만곡을 그리고

 두려움으로 지옥을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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