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 하나가 생겨났다 왼쪽 뺨에 생긴 검은 점은 실수로 찍힌 연필 자국 같았다 유월엔 발자국들이 바람 부는 대로 흩어져 날렸다 내 몸에 부딪히기도 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몸에 찍힌 발자국들을 애써 지웠다 점은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커져갔다 검은 진주를 귀고리처럼 달고 있는 거야 나는 상상했지만 검은 진주는 이내 탁구공만큼 커졌다 칠월엔 모르는 이름들이 빗물에 떠내려왔다 내 발목에 척척 달라붙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이름들을 떼어내며 발목을 씻었다 점이 얼굴 전체에 퍼져 있었다 눈의 흰자위마저 검게 변해 있었다 집 안의 모든 커튼을 내렸다 불 꺼진 방 안에서 꿈 없는 잠들을 거칠게 밀쳐냈다 상한 음식들을 버리지도 못한 채 구월이 왔다 밤새 커다란 잎들이 굴러다니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검은 점에게 갇혔다 검은 점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나는 나를 벗겨내기 시작했다 점들은, 살점들은, 몸에서 떨어져나가는 순간 선명하게 붉은 점이 되었다 문밖에서 태양이 가늘고 긴 손을 뻗어 나를 주우러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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