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 붉은 구름들이 몰려왔다
새들이 하늘을 온통 뒤덮으며 무리지어 날아갔다
뜨거운 빗방울들이 도시의 모든 지붕을 소리없이 조금씩 녹였다
물속에 잠긴 사람들은 따뜻한 꿈을 꾸었다
태어나는 꿈 죽어가는 꿈 모두 따뜻했다
태양과 달이 물속에서 그들을 부드럽게 핥았다
그들의 몸은 녹아가고 사라져가는데
꿈은 녹지 않아 도시는 여전히 튼튼하게 서 있었다
태양은 지지 않고 어둠은 걷히지 않고
물결은 그들의 살갗을 어루만졌다
그들은 눈뜨지 않았고 울지도 웃지도 않았다
자신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조금 슬펐다
그러나 아침마다 거울 속의 자신을 보는 일이 더 슬펐던 것을 기억했다
붉은 구름들은 사라진 도시 위에 오래 머물렀다
사라진 도시 위에 밤마다 새로운 도시들이 생겨났다
서로의 도시를 침범하지 않은 채
서로의 꿈을 들여다보지도 못한 채
새로운 도시 속에서 지느러미를 단 아이들이 태어났다
붉은 구름은 아이들을 녹이지 못했다
그사이 새들이 다시 날아왔고 식물들이 자랐으며
사람들은 눈을 감고도 도시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붉은 구름이 사라지고 나서도 오래
도시가 사라진 것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물속은 더없이 맑고 투명했고
아이들은 환하게 웃으며 헤엄쳤다
키 큰 나무들이 아이들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수만 가지 아름다운 이름들로 불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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