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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은 - 물속의 도시

 

창비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 강성은 시집 (창비시선 303), 단품 단지 조금 이상한:강성은 시집, 문학과지성사 Lo-fi(로파이):강성은 시집, 문학과지성사 별일 없습니다 이따금 눈이 내리고요 - 강성은 시집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11)[ 양장 ]

 

 

 깊은 밤 붉은 구름들이 몰려왔다

 새들이 하늘을 온통 뒤덮으며 무리지어 날아갔다

 뜨거운 빗방울들이 도시의 모든 지붕을 소리없이 조금씩 녹였다

 물속에 잠긴 사람들은 따뜻한 꿈을 꾸었다

 태어나는 꿈 죽어가는 꿈 모두 따뜻했다

 태양과 달이 물속에서 그들을 부드럽게 핥았다

 그들의 몸은 녹아가고 사라져가는데

 꿈은 녹지 않아 도시는 여전히 튼튼하게 서 있었다

 태양은 지지 않고 어둠은 걷히지 않고

 물결은 그들의 살갗을 어루만졌다

 그들은 눈뜨지 않았고 울지도 웃지도 않았다

 자신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조금 슬펐다

 그러나 아침마다 거울 속의 자신을 보는 일이 더 슬펐던 것을 기억했다

 붉은 구름들은 사라진 도시 위에 오래 머물렀다

 사라진 도시 위에 밤마다 새로운 도시들이 생겨났다

 서로의 도시를 침범하지 않은 채

 서로의 꿈을 들여다보지도 못한 채

 새로운 도시 속에서 지느러미를 단 아이들이 태어났다

 붉은 구름은 아이들을 녹이지 못했다

 그사이 새들이 다시 날아왔고 식물들이 자랐으며

 사람들은 눈을 감고도 도시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붉은 구름이 사라지고 나서도 오래

 도시가 사라진 것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물속은 더없이 맑고 투명했고

 아이들은 환하게 웃으며 헤엄쳤다

 키 큰 나무들이 아이들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수만 가지 아름다운 이름들로 불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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