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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은 - 12월

 

창비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 강성은 시집 (창비시선 303), 단품 단지 조금 이상한:강성은 시집, 문학과지성사 Lo-fi(로파이):강성은 시집, 문학과지성사 별일 없습니다 이따금 눈이 내리고요 - 강성은 시집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11)[ 양장 ]

 

 

 씹던 바람을 벽에 붙여놓고

 돌아서자 겨울이다

 이른 눈이 내리자

 취한 구름이 엉덩이를 내놓고 다녔다

 잠들 때마다 아홉 가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날 버린 애인들을 하나씩 요리했다

 그런 날이면 변기 위에서 오래 양치질을 했다

 아침마다 가위로 잘라내도

 상처 없이 머리카락은 바닥까지 자라나 있었다

 휴일에는 검은 안경을 쓴 남자가 검은 우산을 쓰고 지나갔다

 동네 영화관에서 잠들었다

 지루한 눈물이 반성도 없이 자꾸만 태어났다

 종종 지붕 위에서 길을 잃었다

 텅 빈 테라스에서 달과 체스를 두었다

 흑백이었다 무성영화였다

 다시 눈이 내렸다

 턴테이블 위에 걸어둔 무의식이 입안에 독을 품고

 벽장에서 뛰쳐나온 앨범이 칼을 들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숨죽이고 있던 어둠이 미끄러져내렸다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음악이

 남극의 해처럼 게으르게 얼음을 녹이려 애썼다

 달력을 떼어 죽은 숫자들을 말아 피웠다

 뿌연 햇빛이 자욱하게 피어올랐지만

 아무것도 녹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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