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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재 - 서쪽으로 난 창이 있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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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낮도 아닌데 눈이 멀었다 바람은 한없이 늘어나서

 

 목을 움츠려도 기린은 기린

 기린의 기분을

 이해하다 보면 금방 어두워졌다

 

 주먹을 쥐고 잠든 사람 곁에 따라 누우면

 어떤 일이 일어나기도 전에 떨어지는 잎사귀

 

 알아서 가고 알기 전에 와서

 내내 나무는 비어 있다

 

 널어놓으면

 

 햇빛은 금세 없어지고 그늘은

 드러눕기 좋아

 구르다 일어나 반으로 접혔다

 

 반만 보이는 거울,

 가끔 나를 만나면 뒤로 가자고 했다

 여기는 보는 눈이 많으니까

 

 혀 밑에 감춘 알약처럼 세상은

 천천히 녹았다

 

 한곳을 오래 바라보다

 혼자 하고 혼자 지웠다

 우리는 수백, 수천 년 동안 이런 식으로 앉아 있었다

 

 난간 너머로 새가 날아간다

 달려오는 생을 온몸으로 막으며

 

 뾰족해지고 나서는

 어두워질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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