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꾼들에게 가장 위험한 날은
뭐 다 아시다시피
술맛이 물맛인 날이다
반드시 바닥에 누워 바닥을 본다
바람둥이에게 가장 위험한 날은
뭐 다 아시다시피
아무나 여자로 보이는 날,
이 아니다
여자가 다 아무나, 로 보이거나
여자가 오히려 나, 로 보이는 날이다
오늘 나처럼 아무것도 아닌 사람에게 위험한 날은
지구에서 보이고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끼룩끼룩 눈물겨워서
하느님도 되고
어머니도 되고
작부도 되고
정류장도 되고
애인도 되어서 그냥 다 두어두고 싶은 날
울다가 사람으로
그만 돌아가고 싶은 날
기러기 남쪽으로 가고
메추라기 북쪽으로 간 바로 다음 날
그다음 날
우주의 꽉 찬 빈틈이 보이는 날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류근 - 김점선의 웃는 말 그림 판화 (0) | 2020.11.08 |
---|---|
류근 - 시인들 (0) | 2020.11.07 |
류근 - 있겠지 (0) | 2020.11.07 |
류근 - 크리티컬 블루, 재즈학교 (0) | 2020.11.07 |
류근 - 나에게 주는 시 (0) | 2020.1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