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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계영 - 다이얼

 

이런 얘기는 좀 어지러운가:유계영 시집, 문학동네 온갖 것들의 낮:유계영 시집, 민음사 이제는 순수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유계영 시집, 현대문학

 

 

 모두 누울 때를 기다렸다가

 연주를 시작하는 나팔수가 있다

 

 대낮에 주우러 다닌 탄피

 눈 감기를 기다렸다가 눈꺼풀 안에서

 눈부신 방아쇠를 당길 것이다

 

 돌팔이 의사의 레이저 포인트

 한밤중 벽돌을 들고 초인종을 누르는 이웃처럼

 

 사랑은 거 좀 조용히 나눕시다

 밤의 가로등에 열심히 지장 찍는 각다귀들

 놀러간 집 벽거울에 한 번쯤 손자국을 남겨보듯이

 

 슬픔마다 자신만의 미봉책을 마련해야 한다

 

 침대에 바퀴가 달렸다는 건

 아침을 피해 달아날 준비가 되었다는 것

 해가 뜨지 않는 곳에서 눈뜰 수도 있다는 것

 죽음의 사자가 옆집 소파에 누워 빈둥거려왔다는 것

 의자에도 신발에도 바퀴를 다는 부드러운 의지

 

 둘 다인 것으로 하자 마중과 배웅을

 너의 손을 잡고 여기까지 끌고 온 일을

 

 미용실 불 꺼진 창가로 마네킹의 머리

 장발과 민두와 민두와 장발과

 내일은 커트하게 될 거야

 막차를 놓치는 바람에 도착하지 못한 몸뚱이가

 우아한 모자를 들고

 오는 중이라고

 

 울창한 여름 밀서 사이로 새들은 사랑을 나눈다

 나누다 지쳐서 죽은듯이

 잠들고 죽은듯이 입을 다문다

 

 다행히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다

 또다시 아침

 꼭 쥐고 잠든 수화기 너머로부터 당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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