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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계영 - 잠실

 

이런 얘기는 좀 어지러운가:유계영 시집, 문학동네 온갖 것들의 낮:유계영 시집, 민음사 이제는 순수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유계영 시집, 현대문학

 

 

 잘 놀다 갑니다

 동물 귀 머리띠를 쓴 여자애들이

 부활절 달걀처럼 나란히 놓여 졸고 있다

 입을 벌리고

 

 묵음을 운반하던 열차가 떠오른다

 빨간 폭약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봐요 애가 울잖아

 

 네 울음이 입술의 짓인지

 목구멍의 짓인지 알려주렴

 왜 우는지라도 알려주렴

 

 아무래도 내 애가 아닌 것 같아요

 제발 자라 제발 자라 제발 자라

 

 입술을 닫아두어도

 시커멓게 열린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미끄러지는 어린 양들

 그림자를 깔고 앉아서

 다릿심이 붙어도 일어나지 않는다

 

 문득 자다 일어나 빵 봉지를 뜯는 사람

 먹으려고 입을 벌리고

 삼키려고 입을 닫는 모양

 입가에서 카스텔라가 죽죽 흘러내린다

 

 두고 오는

 고대인의 장례 풍습처럼

 문이 열리면 바깥에서 안으로

 빛이 던진 뜨거운 장대

 내릴 사람들이 그 사이를 빠져나간다

 

 나는 볼펜 꼭지를 누르지 않고 받아 적어보았다

 손바닥 위에서 목장을 벗어난 검은 양들이 울고 있다

 

 뭐라고 그러는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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