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애도 온 것 같다 죽은 애가 와서
자신이 죽었다고 귓속말을 흘리는 것 같다
죽은 애가 죽은 것은 모두가 아는 얘기
이럴 거면 그만 나가달라고 누군가 소리친다
사랑의 근시안에 대해서라면
이혼했고
그보다 많이 결혼한 사연 같은 것이라면 들어주겠지만
죽은 애가 죽은 것은 모두가 아는 얘기
들어줄 수 없는 얘기
지하실 냄새와 어울리는 80년대 실내장식이다
토요일 밤에도 파리만 날릴 게 분명한 호프집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다시 만났습니다
그러고도 다시 만났습니다
산 사람처럼 어울려
떠들고 마신다
저승에서도 애국가를 부르나?
동포들만 부르는 노래를?
산 사람들은 부르지 않는 노래를?
거울 속의 내가 즐겨 부르는 노래를?
흐트러진 땅콩 껍질 위에 찍어보는 지장
다른 애가 집었다가 다시 섞어버린 뻥튀기
못다 한 이야기나 나누어봅시다
못다 한 그리움과 못다 한 추태와 못다 한 공격과 못다 한 수비
다 해봅시다 오늘
이야
환영한다 잘살지 않으니까 늙지도 않는구나 쟤가 정통으로 맞은 세월을 용케도 피했구나
축하한다 갓 태어난 아이의 머리통에 수북한 머리털
부모보다 먼저 준비해온 검은 머리 소생의 목적
예고하듯이, 네가 우수수 잃어버리게 될 것을, 이제야
용서한다 열심히 칫솔질할수록 툭툭 터지는
흰 이빨 사이의 빨간 피 이런 얘기는 좀 어지러운가
이해한다 축축한 악몽을 머리핀처럼 꽂고 잠든 밤
온몸의 구멍들이 속수무책 열리고 질금질금 오줌을 흘리고
지긋지긋한 기저귀 신세는 졸업한 지 겨우 오십 년 만에 또 돌아오겠군!
사람의 무릎에 뚜껑이 달렸다는 사실은 죽을 때가 되면 알게 되는 법이다 친구여
무릎 뚜껑이 열리면 가벼운 영혼 같은 건 줄줄 새어나가게 될 테다 친구여
주저앉을 미래와 주저앉힐 미래가 너를 위해 준비되어 있다 친구여
고작 머리 뚜껑이나 열었다 닫는 우정이란
참으로 귀엽군
누군가 오백 시시 맥주잔을 집어던진다
함부로 말하지 마라 우리의 숭고한 인생!
무슨 말이 더 필요해
너무 많은 말이 필요하니까
지금껏 그래왔듯이 죽은듯이 살아가자
산 사람처럼 또 만나자
창밖의 사거리에는 급정거하는 소나타, 클랙슨 소리 위로 미끄러지는 중학생들이 또
횡단보도를 지우고
내가 나인 것이 치욕스러웠던 날들과 떳떳했던 날들을
마구 흘리며
달아난다
그러나 쇠고랑 끝에 매달린 금속 추처럼
죽은 애의 죽음을 끌고 간다 우리는
후렴구를 연거푸 반복하면서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계영 - 참 재미있었다 (0) | 2021.01.13 |
---|---|
유계영 - 개와 나의 위생적인 동거 (0) | 2021.01.13 |
유계영 - 왼손잡이의 노래 (0) | 2021.01.13 |
유계영 - 심야산책 (0) | 2021.01.13 |
유계영 - 눈금자를 0으로 맞추기 위해 (0) | 2021.0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