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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계영 - 개와 나의 위생적인 동거

 

이런 얘기는 좀 어지러운가:유계영 시집, 문학동네 온갖 것들의 낮:유계영 시집, 민음사 이제는 순수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유계영 시집, 현대문학

 

 

 기분은 어제를 좋아하니까 헛짖는 것이다

 냉장고에 붙여둔 포스트잇이 내일을 향해 킁킁거릴 때

 너는 도대체가 관심이 없겠지만

 국 데워먹어라 사랑한다 이 문을 열면 네가 좋아하는 선선한 바다

 

 너는 맛있는 냄새가 나는 쪽으로는 가지 않지 밤나방이 흔드는 팔랑개비를 쫓아 바다까지 가지

 그러다가 배가 고프면 죽어버린다

 파도가 발치에 닿기도 전에 되돌아가던 일처럼

 파도가 해변의 무대 매너를 망치려 드는 것처럼

 

 슬픔은 어제를 좋아하니까 뒷걸음치는 것이다 개골창에 다 흘리고 가는 것이다

 네가 달려가 코를 박고 즐거워한다

 마음이 있어서 마음대로 한다

 

 먹은 것이 뱃속에 무사히 도착했는지 궁금해

 마음이 어제로 돌아왔는지

 

 아직도 너의 가장 외로운 곳에

 귀라는 이웃이 망연히 서서

 초인종을 누르고 말이 없는지

 너는 고개를 흔들어 그것을 확인하는지

 

 오늘은 깨끗하다

 모두 어제를 더 좋아하니까

 밤의 톱니바퀴가 운반해 가버리니까

 너는 오늘의 다리가 어제의 다리보다 조금 더 긴

 기분을 알기에 다리를 질질 끌고 다닌다

 나는 그걸 보고 울기도 하고 마음을 고백하기도 한다

 

 잘 붙어 있던 포스트잇이 툭 떨어진다

 잘사는 줄 알았는데 돌연 뚝 떨어지는 사람처럼

 국 데워먹어라 사랑한다 이 문을 열면 네가 좋아하는 신선한 바다

 

 우리는 F층에서 만나 같은 가구에 올라가 잠든다

 개와 개 아닌 마음

 마음이 있어서 마음대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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