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으로부터 진화했다고 했다 그러나
인류로부터 진화한 일은 아니다
연무 그러니까 새벽은
숲에 들어가 잎담배를 말아 피우고
그곳으로부터 메아리
이렇게 되고 나서야 이해됐다는 말
너무 멀리 돌아온 말은
모르는 게 낫고
뛰어오는 사람이 다 신처럼 보일 때가 있었다
그러고 나니 넘어지려는 사람도 모두 신처럼 보였다
한 번의 종이 울릴 때마다
한 번씩 아득해지고 있다
몇 번의 종이 울려야
유전적 형질을 벗어날 수 있을까
천장을 본 건 아니다
침대 위에 친구의 걸상이 있다는 걸 알았을 뿐이었다
피가 멈추지 않던 날엔
발이 없는 것들이 무섭지 않았다
언젠가 또 이런 날이 올까
흐린 고양이가 지나갔다
솔리스트여 그랑 솔리스트여
썰물을 기다리는 솔리스트여
흐린 고양이처럼 발자국만 찍고 사라지는 솔리스트여
울창하게 끊긴 해안선
믿음을 가져라
만조 만조
반석 위에서 잠기던 교수여
무엇이 그리 자유로워 소리칩니까
신을 겪는 순간이 올 거야
신을 겪는 순간이 올 거야
할복한 땅거미와
양호실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괘종 대신
앵두라도 떨어지면
엷게라도 지워 볼 텐데
이제 시간은 천장 밑으로도
걸상 밑으로도 떨어지지 않네
희망 같은 걸 색종이처럼 접어 둘 수 있다면
여러 장을 한꺼번에 접는 날도 있었겠지만
세로토닌이 펄 위에서 저물면
포성이 울렸다 모든 공간이 퍼졌다 포성 바깥으로
날아가는 동그란 점 같은 걸 인류는 죽음이라 부르네
여진이 오고 있다
꿈에서까지 나를 죽이러 오고 있네요
진열장에 넣어 둔 대기표를 셉니다
기다리다 돌아온 건 스스로만 아는 일이겠지만
불현듯 순번 속으로 사라진 수증기 같은 것도 있었다
인간은 인간을 돌이킬 수 없고
인간에겐 더 많은 인간이 필요했다는
유서를 열람한 적 있어요
그 인간은 인간으로 죽었나
인간이 아닌 모습으로 죽었는가 궁금했지만
알 수 없었다
증류수를 갈아 끼우며
펄의 구멍을 메우는 밀물이나
씻을 때마다 마르는 제물을 느낄 때도 있었다
눈사람은 그런 식으로 야위어 갔다
철새가 포수의 손안으로 쓸려 들어올 때
간증 속에 잠겨 있던 인간의 평안이 울렸다
포성보다 크게
네가 신을 겪는 순간이 올 거야
네가 신을 겪는 순간이 올 거야
잔을 헹구어 거꾸로 둔다고
기압이 낮아질 수는 없겠지만
금식과 악담을 견디며 쓴
세 문장으로 된 유서를 본다
어디까지 쫓아올까
달아나는 곳
그곳에서 딱 한 걸음 뒤에 그것들이 있나
돌아오지 않는 마니또여
돌아보지 않는 마니또여 나는 여전히
회전문 안에서 발을 맞추는 일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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