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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하 - 물잔에 고인 물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이원하 시집, 문학동네 [달] 내가 아니라 그가 나의 꽃 (이원하) (마스크제공), 단품 신춘문예 당선시집(2018), 문학세계사

 

 

 보일 듯 말 듯한 물을 마셨어요

 

 이 느낌이 그 느낌이 맞는다면

 나는 바랄 것이 없을까요

 

 젖은 하늘에서

 비가 오지 않네요

 뭐라도 던져서 반응을 보고 싶은데

 내가 가진 건 말뿐이네요

 

 하고 싶은 말을

 허공에 수차례 던져도

 아무도 손대지 않네요

 

 비는 왜

 섬에 오지 않을까요

 

 뜬구름이 나를 그늘진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는데도 왜 오지 않을까요

 

 기다리다 기다리다 마지못해

 비가 내리면

 그땐 우산으로 나를 가릴 거예요

 

 우산 아래서는

 그를 만난 표정을 지어도,

 어떤 고백을 해도, 물건을 훔쳐도,

 숨어 있어도, 눈에 띌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