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원하 - 말보단 시간이 많았던 허수아비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이원하 시집, 문학동네 [달] 내가 아니라 그가 나의 꽃 (이원하) (마스크제공), 단품 신춘문예 당선시집(2018), 문학세계사

 

 

 죽은 나무를 구해다 마당에 심었어요

 죽은 목숨이었지만 발전이 있어 보였거든요

 

 죽은 나무는 절대

 그 누구에게도, 하늘에게도

 먼저 다가가지 않았어요

 

 덕분에 나는 죽은 나무를 보며

 매일 안심할 수 있었죠

 

 대화를 위해 죽은 나무 위에

 공을 매달았더니 생명이 됐어요

 

 그걸 허수아비라고 부르기 시작했어요

 

 드디어 내게도 친구가 생겨서

 촛불을 켜고 축하하다가

 그만

 허수아비의 몸에 불이 붙어버렸어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만

 허수아비는 그때 한마디했어요

 

 이제야 말이 더듬더듬 나온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