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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하 - 가만히 있다보니 순해져만 가네요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이원하 시집, 문학동네 [달] 내가 아니라 그가 나의 꽃 (이원하) (마스크제공), 단품 신춘문예 당선시집(2018), 문학세계사

 

 

 몸을 녹이기 위해 창문을 닫으니

 잘 살아보라는 것처럼

 뜨거운 기운이 속을 드러냅니다

 

 나는 가뿐해진 몸으로

 개 대신 기르는 신경초를 건드립니다

 

 건드리니 신경초의 어깨가 움츠러듭니다

 내 손이 아직 차가운가봅니다

 

 몸을 제대로 녹이기엔 난방이 좋지만

 가스통은 회색이라 아껴야 합니다

 속을 알 수 없으니 일단 아껴야 합니다

 도통 속을 알 수 없는 게 사람을 닮았습니다

 

 닮았다니까 좋은가요?

 

 움직이는 신경초가 얼마나 예민하게요

 

 대답해줄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눈이 내려도

 밖으로 나와볼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무너지듯 주저앉아 울 수 있는

 의자를 하나 살까요

 사람 때문에 무너져본 적 없는

 잘 살던 의자를요

 

 아니다, 앞으로 자주 울지 않을 거니까

 아무 의자나 살까요

 고민이네요

 자고 일어나서 다시 생각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