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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하 - 코스모스가 회복을 위해 손을 터는 가을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이원하 시집, 문학동네 [달] 내가 아니라 그가 나의 꽃 (이원하) (마스크제공), 단품 신춘문예 당선시집(2018), 문학세계사

 

 

 내가 가을을 봄이라 부른 건요

 실수가 아니에요

 봄 같아요 봄 같아서

 

 얼굴에 입은 거 다 벗고

 하늘에다 바라는 걸 말해봅니다

 

 하지만 하늘에다 말한 건 실수였어요

 실수를 해버렸으니

 곧 코스모스가 피겠네요

 

 코스모스는 매년 귀밑에서 펴요

 

 귀밑에서 만사에 휘둘려요

 한두 송이가 아니라서

 휘둘리지 않을 만도 한데 휘둘려요

 

 어쩌겠어요

 

 먹고살자고 뿌리에 집중하다보니

 하늘하늘거리는 걸 텐데

 어쩌겠어요

 

 이해해요

 나름의 의미와 가치가 있잖아요

 귀밑에서 스스로 진리에 도달하고

 질문도 없잖아요

 

 그 좁은 길

 무게 넘치는 곳에서

 질문이 없잖아요

 

 꺾어다 주머니에 찔러넣어도

 내년에 다시 회복할걸요

 

 휘둘리며 사는 삶에는

 애초에 비스듬하게 서 있는 것이 약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