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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하 - 누워서 등으로 섬을 만지는 시간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이원하 시집, 문학동네 [달] 내가 아니라 그가 나의 꽃 (이원하) (마스크제공), 단품 신춘문예 당선시집(2018), 문학세계사

 

 

 빨래를 하려고 일어났다가 오랜만에 쏟았다

 내가 하도 울어서 바다가 생겼다

 멍든 물을 뒤지다가 바람을 쓰러뜨렸다

 파도도 내가 그랬다

 

 온통 평상인 섬에서

 마음을 들키며 살고 있었다

 

 향기 없이 무게만 남은 것들을 모아

 무너진 가방 속에 막내로 넣어두는 일을 하였다

 향기가 없는데도 가방 안에 잘 담겨서 쉬운 일이었다

 

 평상에 누워 전신을 떨 때면

 구겨지는 듯한 요란한 소리가 났다

 늘 땀도 조금씩 났는데 한국식 땀은 아니었다

 

 혼자인 모습을 바지 추켜올리듯 추켜올렸다

 하루종일 숨어 지낸 것 같아서 만족스러웠다

 밖엘 나갔고 누군갈 만났지만 말을 별로 하지 않았으니

 숨어 지냈다고 할 수 있겠다

 

 음악이 입을 다무는

 저녁 일곱시

 눈에 경련이 왔고

 한 사람의 얼굴이 득달같이 달려들었으나

 알아보지 못했으므로 섬의 뿌리를 파먹었다

 나방을 먹는 느낌이었다

 

 저녁 일곱시

 섬은 신학기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