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잎새 밑에 가려진 붉은 호박을 땄다. 알 수 없는 우열을 나타내며 들꽃들이 커 가고 길들지 않은 구두 뒷굽이 자꾸만 길을 솎아 낸다. 문득 길을 돌아보면 아카시아 잎사귀는 정말로 마지막이란 말을 담으며 그리움을 눈부셔 하고 있었다. 빨래가 말라 가던 대낮에, 젖은 쓰레기가 조금씩 먹음직스러워졌다. 코 나간 애인의 스타킹이 내내 음식 찌꺼기를 걸러 내던 여름, 멀리 쫓아내도 상처는 더럽혀지지 않았다. 아직도 분가루가 걸레에 닦여 나오네, 죽은 지가 언젠데 자꾸 뭘 흘리고 다니는 할머니가, 엄마는 원망스럽다. 더러 버려진 여름이 봉지 밖을 걸어 나온다. 여름 개암 열매에는 아직 세속의 이름이 없다고 애인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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