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에게도
고백의 성분이 있을까?
아직 비린 덩어리일 텐데
눈물 없는 데서 고백을 꺼내는 일
할 수 없으니까 짐승들은 털만 따뜻했다
숲에서
짐승들이 불현듯 울었지만 고백이 아니다
몸 안에서도 몸 밖에서도
실패
곧 그들은 무심히 드러눕고 나는 서 있다
고백을 참을 때마다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졌다
고백할 게 많아도
짐승처럼 지냈다
고백 없이
누가 불빛을 가려 줘도
고백하지 못했다
하얀 것들이 모자라서
나는 새하얀 것들을 믿는다
대부분 고백이라서
숲의 하루는 무참히 저물고
고백이 상하는 동안
고백이 그리운 사람들
그 어두운 골목에
우수수 떨어지는
부스러기
부스러기들
뒤집어 본다
고백이 거의 사라진 사람들이 걸어 나온다
화들짝 놀란다
고백을 삼킨 사람들이 얼마나 빠르게 짐승의 두 눈을 갖는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문자 - 위험한 하나님 (0) | 2020.12.08 |
---|---|
최문자 - 비누들의 페이지 (0) | 2020.12.08 |
최문자 - 밤의 경험 (0) | 2020.12.08 |
최문자 - 잎 (0) | 2020.12.08 |
최문자 - 2014년 (0) | 2020.1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