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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 여름은 무색무취

 

문학수첩)오늘의 냄새 : 이병철 시집 (시인수첩 시인선 10) [새미]원룸속의 시인들 - 새미비평신서 22, 새미 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이병철 산문집, 산지니 낚 ; 詩 : 물속에서 건진 말들, 북레시피

 

 

 여름은 우리의 대화를 버터처럼 녹이고 있다

 

 우리는 여름의 일에 대해선 이야기하지 않는다

 

 맥주를 서툴게 따라 거품이 넘쳐흐르던 장면과

 

 그것을 보며 나를 놀리던 네 웃음소리 같은 거

 

 아무 색도 칠하지 않은 여름은 다 여름이 된다

 

 김치를 찢는 방식의 다름이 우리의 다름이라고

 

 일요일과 월요일만큼 가까우면서 아득한 우리가

 

 한참을 싸우는 동안 김치찌개는 더 맛있어졌고

 

 여름은 이제 빨간 국물이라는 이미지를 얻었다 

 

 간신히 색채를 빼앗기지 않은 여름들만 남아서

 

 여름을 이루고 있다, 아무런 고통도 없이 막

 

 태어나고 죽는 여름이 슬리퍼 신은 네 발 아래

 

 빙글빙글 돈다, 찌개의 감정과 분위기가 사라진

 

 여름에 우리는 오래된 노래를 오래된 방식으로

 

 부르다 말다 하며 편의점 앞에 종일 앉아 있다

 

 얼음 컵 속에는 이미 끝나버린 여름이 있고

 

 너의 눈 속에는 아무것도 아니어서 고요한

 

 여름이 있다, 이제 여름은 무색무취의 이미지

 

 우리는 여름 안에서 꽤나 함께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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