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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녀 - 나의 잠은 북쪽에서부터 내려온다

 

양들의 사회학:김지녀 시집, 문학과지성사 [민음사] 방금 기이한 새소리를 들었다 (마스크제공), 단품 시소의 감정, 민음사

 

 

 북쪽을 모르면서

 북쪽이 그리웠다

 

 나는 감염된 계절이에요 팔과 다리를 오므리고 한 덩어리의 어둠으로 녹아가는 중입니다 크고 검은 고래의 뼈를 생각합니다 아늑한 동굴입니다

 

 얼마나 남았을까요?

 나는 벤젠처럼 냄새가 없어요

 창문을 열어놓고 자는 버릇을 고칠 수가 없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을 지우면서

 휘파람을 불면서 아래로

 더 아래로, 추락하는 꿈속에서

 찬바람이 불어, 나를 모르는 사람의 눈동자에서

 

 충혈된다는 것은 출구가 없다는 것

 

 빗속에서도 젖지 않고 메말라가는 곳

 그런데 나는, 언제까지 뻗어가야 하는 동굴일까요?

 

 닫힌 서랍 속에서

 북쪽의 태양이 길어지고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자꾸만 태어나고

 

 북쪽을 모르면서

 북쪽이 그리웠다

 

 나는 조금 더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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