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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 - 홀

 

[문학과지성사]거인 - 문학과지성 시인선 R 17, 문학과지성사 모두가 움직인다:김언 시집, 문학과지성사 한 문장:김언 시집, 문학과지성사 소설을 쓰자, 민음사

 

 

 너무 황홀해서 병원으로 간 두 사나이가 있다.

 처음과 끝 - 복도에서 만난 두 사람의 일대기

 우리는 초면이고 우리는 여러 번 악수했고

 포옹했고 깊은 얘기를 나눈 뒤에

 마치 처음 만난 사람처럼 출신 학교와 고향을

 물었다. 우리는 같은 곳에서 태어났고

 같은 시절을 같은 고등학교에서 보낸

 감회를 얘기하며 오래 생각에 잠겼다.

 너는 그때 어디 있었지?

 졸업하고 여기 와서 너를 처음 만났지.

 이름이 뭐더라?

 내가 불러준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처음과 끝 - 복도에서 만난 두 사람의 대화는

 해가 질 때까지 예의를 갖추고 적당히

 알아듣고 모르는 말은 건너뛴다.

 복도를 가르는 음악이 저녁에서

 밤으로 경쾌하게 건너뛴다.

 병원은 이른 아침부터 불을 켜두었다.

 다음 날 아침까지 컴컴한 복도에서

 우리는 처음 만난 사람처럼 악수를 나누고

 헤어질 때도 포옹을 하고 명함을 꺼내어

 각자의 이름을 확인한다.

 우리가 어디서 봤더라?

 작년에 만났지. 재작년에도 만났고

 선인장이 꽃을 피우는 동안

 너는 충분히 나는 더럽게 걸어왔으니

 우리 둘이 만난 병원에서

 우리 둘이 만난 것을 기억 못 하는 병원과

 환자들의 길고 긴 복도 끝에 겨우 흔적이 있다.

 닦아보면 흐려지는 뜨거운 거울 속에서

 서로의 입김을 지우며 너는 말끔히 태어난다.

 그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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