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라서 그럴까? 나는
의자를 잊은 채
의자에 오래 앉아 있었다.
잠을 완전히 잊은 뒤에
잠에 도착한 사람 같았다.
거기는 아이가 아이를 잃어버리는 순간들이
낙엽처럼 쌓여 있는 곳
우산도 잃어버리고 공책도 잃어버렸기 때문에
나는 잃어버린 물건들에서 점점
멀어지는 순간을 살아갔다.
숲 속은 잃어버린 나무 같은 게 없는 곳인데
푸른 하늘과 검은 우주가
같은 곳인데
조금씩 다른 빗방울들이 떨어져서
나는 새로 산 우산을 펴 들었다.
그것이 잃어버린 우산과 같지 않았다.
빗방울들이 모두 달랐다.
이 비 그치고
지금 당신이 바라보고 있는 밤하늘을 내가 바라보자
거기 어딘가의 별들 가운데
깊은 자리가 하나 비어 있었다.
조용한 의자를 닮은
그런 밤하늘이라고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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