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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욱 - 조용한 의자를 닮은 밤하늘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이장욱 시집, 문학과지성사 기린이 아닌 모든 것:이장욱 소설집, 문학과지성사 천국보다 낯선:이장욱 장편소설, 민음사 동물입니다 무엇일까요:이장욱 시집, 현대문학 혁명과 모더니즘:러시아의 시와 미학, 시간의흐름

 

 

 가을이라서 그럴까? 나는

 의자를 잊은 채

 의자에 오래 앉아 있었다.

 잠을 완전히 잊은 뒤에

 잠에 도착한 사람 같았다.

 거기는 아이가 아이를 잃어버리는 순간들이

 낙엽처럼 쌓여 있는 곳

 

 우산도 잃어버리고 공책도 잃어버렸기 때문에

 나는 잃어버린 물건들에서 점점

 멀어지는 순간을 살아갔다.

 숲 속은 잃어버린 나무 같은 게 없는 곳인데

 푸른 하늘과 검은 우주가

 같은 곳인데

 

 조금씩 다른 빗방울들이 떨어져서

 나는 새로 산 우산을 펴 들었다.

 그것이 잃어버린 우산과 같지 않았다.

 빗방울들이 모두 달랐다.

 이 비 그치고

 

 지금 당신이 바라보고 있는 밤하늘을 내가 바라보자

 거기 어딘가의 별들 가운데

 깊은 자리가 하나 비어 있었다.

 

 조용한 의자를 닮은

 그런 밤하늘이라고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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