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멀리 보았다. 그래도 네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말했다. 눈을 열고 창밖을 보았다. 길도. 거짓말처럼. 공기는 벌써 차갑다. 서리와 우박이 하늘로 올라가고 있다. 되감아지는 말들처럼. 그렇게 보이기도 하는 말들처럼. 내가 말했다. 그러나 내리긴 내린다. 겨울이 와버렸다. 나는 멀리 보았다. 나는 너에게 줄 수 없지만 따뜻한 많은 것들을 가졌다. 그것들은 배 속의 딸기처럼 저장되어 있다. 나는 웃었다. 너는 딸기의 꼭지를 단정히 쓸어 담는다. 그것이 내 배를 아프게 한다. 그때 나는 본다. 딸기가 배꼽까지 물들인 것. 그런데 배꼽이 여전히 내 배꼽인 것. 그래서 너에게 줄 수 없었다.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다. 내가 말하자. 보자. 네가 내 이마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손바닥만 한 머릿속이 환해진다.
뒤집어보면 나는 너의 인형 같은 일관됨이며 그것이 불러일으킨 애정이며. 모두 경멸할 수 있었다. 또 뒤집어보면 겨울이 와버렸다. 눈이 내려버렸다. 거짓말처럼 길도 새로워 보이고 어둠도 조금 새로워 보인다. 딸기는 껍질이 없어서 깎을 필요도 없는데 수고롭다. 네가 떨어진 꼭지 하나를 주워 들고 말했다. 마지막 하나까지, 나는 본다. 되감아지는 기억처럼, 내리고 금세 녹아가고 있다. 눈 한 송이까지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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