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는 몰래 울었다. 살려고 이불을 덮으면 너무 무겁구나. 죽으려고 이불 밖으로 기어 나가면 너무 춥다. 모두 모여서 덜덜 떨고 있던 밤이었다. 등을 구부리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밤이었다. 얼음이 쌓인 입구를 향해 우리는 고개를 돌렸다. 외할머니, 우리가 이 길을 닦아 놓았어요. 당신의 이름이 깊어지도록 천천히 조문을 썼습니다. 현실에 조난당한 우리가 썼습니다. 추운 벼랑 앞에서 썼습니다. 유리병에 담겨 어딘가로 흘러가는 신화는 이곳에 와서 다 부서졌다. 한평생 지옥 속에서 큰 솥에 죽이나 쑤고 있는 기분이야. 죽은 외할머니는 다시 울먹거렸다. 불은 매일 꺼졌지. 등을 구부리고 바닥을 헤집으면 시간이 나뒹굴고 있었다. 입김을 불어넣었지. 그때 죽어버린 건 누구였을까.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이불 속에서 검은 머리칼이 흘러나왔다. 털이 가득한 밤. 이불이 길게 자라나고 있었다. 모두 모여서 검은 이불을 덮고 자신의 이름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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