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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 - 열대야

 

어떤 사랑도 기록하지 말기를:이영주 시집, 문학과지성사 108번째 사내 : 개정판 언니에게:이영주 시집, 민음사 차가운 사탕들, 문학과지성사

 

 

 한 바퀴 동네를 돌고 오면 가족은 줄기도 하고, 늘어나기도 한다. 여름에는 우는 법을 잊은 고양이가 돌아오고. 나는 꿈결인 듯 마당에 주저앉아 만져지지 않는 발을 만져보았다. 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가족이 생겼는데, 너무 잘 아는 얼굴. 어린 외삼촌이 나무에 걸터앉아 무서워서 울고 있다. 내려가고 싶은데 나무는 조금씩 꿈 밖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집이란 이곳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몰라. 병원 침대에서 외삼촌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나는 한여름 밤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가족이었던 누군가가 폐허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있다. 오래된 집은 파손되고 부서져 있다. 부서진 틈에 대고 깊은 한숨을 몰아쉬며 죽은 고양이가 말했다. 얼마나 다행이니. 누구나 자라면 우는 법을 잊는대. 나는 잡히지 않는 백발이 마당에 흩어지는 것을 보았다. 꿈 밖에서는 아무도 이곳으로 돌아오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나는 운동화를 신고 무너진 담장을 뛰어넘었다. 여름 바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먼저 죽은 삼촌은 나무에서 계속 자랐다. 우는 나무가 현실로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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