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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욱 - 장화 신은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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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것이 서로를 예외로 만드는 순간에

 금방 태어난 표정.

 장화 신은 고양이가

 갸웃거리는 표정.

 

 허공이란 예외가 없는 곳.

 나의 뒷모습이 나의 예외가 아니듯이.

 빗방울이 구름의 예외가 아니듯이.

 장화 신은 고양이는 하루종일

 뭔가 생각하려고 했다.

 

 우체국은 우체국의 바깥에서 시작되고

 안개는 안개에게서 열심히 멀어져갔네.

 새벽에는 마침내 자욱해져.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나가면

 

 장화 신은 고양이가

 장화 신은 고양이에게 도달하는 것.

 집에서 집으로 이어지는 것.

 우리는 비 내리는 지붕 위에서 만나자.

 때마침 황혼이 시작되는 그곳에서.

 신발과

 발톱과

 몇개의 길고 하늘하늘한 깃털이

 전혀 다른 이유로 존재하는 그곳에서.

 

 장화 신은 고양이는 타닥타닥

 지붕 위를 성실하게 달려갔다.

 뛰다가 걷다가

 멈춰서서

 물끄러미 장화를 벗어보는 저녁.

 

 한 마리의 고양이가

 고양이로서 가만히 태어나는

 그런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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