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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욱 - 흘러넘치다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이장욱 시집, 문학과지성사 정오의 희망곡:이장욱 시집, 문학과지성사 기린이 아닌 모든 것:이장욱 소설집, 문학과지성사 천국보다 낯선:이장욱 장편소설, 민음사 내 잠 속의 모래산:이장욱 시집, 민음사

 

 

 당신은 뚜껑으로 닫을 수 없다.

 모자라든가 자동문

 오늘의 뉴스로도.

 

 마치 물로 만든 의자처럼

 누군가 거기 앉으면 풍덩,

 빠져버릴 것처럼.

 

 햇빛이 당신을 넘치고 그녀의 말이 당신을 넘치고

 가정의 평화와 일기예보 역시.

 당신은 또

 당신에게서 벗어난다.

 

 메뉴판의 메뉴들을 꼼꼼히 읽어가듯이

 비밀번호를 입력하듯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듯이

 당신의 정오를 닫을 수도 있겠지만

 

 잠자는 사람이 터지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악수하는 손

 불판 위에서 타오르는 돼지의 살

 혼자 밥 먹는 사람의 일요일 역시.

 

 조용히 모자를 쓴 뒤에

 행인이나 군중이 될 수 있다.

 빙하처럼 거대하게 녹아가는 것은 북극에도

 청량리에도 있으니까.

 창밖의 풍경이란 갑자기 발생하는 것이 아니니까.

 

 어디에나 뚜껑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북극곰의 밤이 닫히지 않는다.

 아무리 신중하게 앉아 있어도

 내부는 이미 내부가 아니다.

 

 지금 당신 앞에 흘러넘치는 찻잔이 있다.

 잔은 기울어지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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