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장욱 - 동행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이장욱 시집, 문학과지성사 정오의 희망곡:이장욱 시집, 문학과지성사 기린이 아닌 모든 것:이장욱 소설집, 문학과지성사 천국보다 낯선:이장욱 장편소설, 민음사 내 잠 속의 모래산:이장욱 시집, 민음사

 

 

 누군가의 위치에서 나는 매일 경험을 했다.

 나이와 습관을 외운 뒤 처음으로 연인의 이름을 불렀다.

 화가 난 목소리로.

 좋아하는 목소리로.

 

 일용품들의 위치를 묻지 않고도 생활을 했다.

 처음 보는 면도칼을 목에 대고 움직였다.

 작은 개에 대해서 상상해보지 못한 애정을 느끼고

 딱딱한 치아가 조금씩 어긋나고

 바지가 몸에 안 맞고

 그래도

 

 정기적으로 근무를 했다.

 낯선 동작으로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거울을 보았다.

 왼쪽 귀는 오른쪽 귀

 뒷모습은 어디로 갔나?

 손톱이 길어요.

 

 저녁에는 애완견이 자꾸 죽어서 묻어주었다.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 운동장을 달렸다.

 전속력에서 시작해서 조금씩 느려졌다.

 틀니를 뺐다.

 

 누군가의 손을 잡고 나는 잠이 들었다.

 목에서 피가 흘렀다.

 이 모든 것을 동행이라 부르고 싶었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장욱 - 평균치  (0) 2021.05.05
이장욱 - 흘러넘치다  (0) 2021.05.05
이장욱 - 피사체  (0) 2021.05.04
이장욱 - 코인로커  (0) 2021.05.04
이장욱 - 드라마  (0) 2021.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