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A는 B와 C와 D와 E와 F와 G와 H와 잤다 절정의 순간에는 어김없이 데모크리토스의 문장이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만물은 원소들의 무작위한 결합이다! I와 J와 K와 L과 M과 자도 데모크리토스는 한번 내뱉은 말을 번복하지 않았다 만물은 원소들의 무작위한 결합이며 본질은 없다
2
시는 관측된 현상에 대한 설명을 오직 자연적인 원인에서만 찾는다
시는 관측된 현상을 최대한 단순하게 설명하는 자연의 모형을 만들고 시험하면서 발전한다
시는 자연현상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하고 그 결과가 관측 결과와 일치하지 않을 때는 수정되거나 폐기된다
3
중력의 법칙은 원자보다 작은 입자들의 세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신이 원자보다 작은 미생물이기 때문이다 신은 너무 커서 보이지 않는 게 아니라 너무 작아서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고 따라서 신을 보려면 특수한 기구가 필요하다 신은 인간과 연락을 끊기 위해 자신이 속한 세계에 인간세계의 중력 법칙이 미치지 못하도록 막았는데 인간들이 섭섭해한다
4
a는 a의 1제곱이지만 그렇지 않은 척한다 여기서 1은 공기 같은 것이므로 굳이 공기가 있다고 알릴 필요가 없다 사람들은 제곱이나 세제곱과 달리 1은 생략하기로 새끼손가락을 걸어 약속했고 그것은 외로워서였다 1을 표기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절약이자 단련 혹은 정신 수양이었다
5
하늘에는 보이지 않는 급사면이 있어서 새들이 자꾸 미끄러진다
6
버스 뒷좌석에 여고생 둘이 앉아 있다
은성아, 지금 몇 시야?
4시 24분
사람 a는 속상하다
세상이 지금 몇 시인지, 그런 무서운 이야기는 알고 싶지 않은데...
사람 a는 생각한다
지구의 반지름은 대략 6400km이므로
원둘레 공식을 활용해 지구의 둘레를 구한 후,
24시간으로 나눈 결과 지구는 시속 1647km로 달리고 있다
따라서
지구가 달리는 방향과 정반대로 시속 1647km의 속력을 내야만
우주의 관점에서 볼 때 사람 a도, 우주도 평화롭고 정적인 상태로 보일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 a는 세상을 까먹기 위해
거침없이 달리고 있는데 사람들은 왜 지금이 몇 시인지 말하는 것일까?
7
한 달 내에 생리를 다섯 번 하면 머리를 긁을 때 피딱지 부스러기가 손톱에 끼었다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보영 - 복도가 준비한 것 (0) | 2021.04.07 |
---|---|
문보영 - 남는 부분 (0) | 2021.04.07 |
문보영 - 도로 (0) | 2021.04.07 |
문보영 - 지나가는 개가 먹은 두 귀가 본 것 (0) | 2021.04.07 |
문보영 - 불면 (0) | 2021.04.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