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손을 내밀어도 잡히지 않는 손, 발목이 비틀린 짐승이 낮게 뒹굴었다 너의 머리 위로 지나는 구름을 기억하렴 풀무치들과 죽은 해바라기까지,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든 것 같아, 우리는 걸었다 그쪽으로, 빛이 멀어지고 키 큰 나무들이 두서없이 흔들렸다 혀를 말고 잠이 든 까마귀와 밤 사이 불어난 이끼들, 발가락에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어 일요일은 계속 걸었다 지겨운 짐승들의 울음이 위안이 될 때까지, 오늘의 운세는 북쪽을 피하라 이곳은 어디에도 없는 곳이야 우리는 일요일처럼 설핏 웃었다 긴 밤이 덮쳤다 돌아보아도 돌아갈 수 없는 어둠만 되풀이되는, 그럴수록 귓바퀴를 돌던 물소리는 얼마나 환하게 반짝였던가 나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까 흔적만 남은 풍경이 너의 다리가 될 때까지 그쪽으로, 일요일은 걷고 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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