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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부코스키 - 두 왈짜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민음사 호밀빵 햄 샌드위치:찰스 부코스키 장편소설, 열린책들 창작 수업, 민음사 글쓰기에 대하여, 시공사 사랑에 대하여, 시공사

 

 

 L. A. 시립대학엔 왈짜가 둘 있었다.

 나, 그리고 제드 앤더슨.

 앤더슨은 풋볼 공을 잡으면

 번개처럼 질주해 돌파하는

 대학 역사상 최고의 러닝백이었다.

 나는 험상궂게 생긴 주제에

 스포츠를 별종들의 게임 정도로 여겼다.

 내 보기에 더 큰 게임은

 우리를

 가르치려 드는 인간들에 대한 도전이었다.

 

 제드와 나는 캠퍼스의 양대 걸물이었다.

 제드는 야간 경기에서

 달리기 기록을 60, 70, 80야드로 차츰 갱신했고

 나는 낮 동안

 죽치고 앉아

 알지도 못하는 것을 지어 냈다.

 내가 아는 것은 죄다

 많은 교수들이 말을 뱅뱅 돌리며

 요리조리 피할 만큼

 나쁜 것들뿐이었다.

 

 대망의 날

 제드와 나는

 마침내 만났다.

 캠퍼스 맞은편

 주크박스가 있는 작은 가게에서.

 그는 친구들과

 앉아 있었고

 나는 내 친구들과

 앉아 있었다.

 

 "가 봐! 가 봐! 놈이랑 얘기해 보라고!"

 내 친구들이

 재촉했다.

 나는 말했다. "허우대만 멀쩡한 놈

 쯤이야. 난 니체랑 편 먹은

 놈이야. 저놈더러

 이리 오라 해!"

 

 마침내 제드가 자판기에서

 담배를 사려고 

 일어섰을 때

 내 친구들이 물었다.

 "저 자식한테

 쫄았냐?"

 

 나는 일어서서

 담배갑을 집으려

 자판기 안에 손을 넣는

 제드 뒤로 다가갔다.

 

 "안녕, 제드." 나는

 말했다.

 

 그가 돌아섰다. "안녕,

 행크."

 

 그러고는 뒷주머니에

 손을 넣어

 1파인트 위스키 병을 꺼내

 내게 건넸다.

 

 나는 양껏 쭉 들이켜고는

 그걸 

 돌려주었다.

 

 "제드, 졸업

 후에

 뭐 할

 생각이야?"

 

 "노터데임에서

 뛰어 볼까 해."

 

 그는 자기 테이블로

 돌아갔고

 나는 내 테이블로

 돌아왔다.

 

 "뭐래?

 뭐라든?"

 

 "별말 없었어."

 

 제드는 노터데임에

 들어가지 못했고

 나 역시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둘 다 세월에 휩쓸려

 표류했을 뿐.

 하지만 놈들 중에는

 잘나간 놈도 있었고

 그중에 한 놈은

 유명한

 스포츠 칼럼니스트가 되어

 나는 수십 년간

 신문에서

 그놈의 사진을

 봐야 했다.

 물려받은

 거지 소굴 같은 방에서

 바퀴벌레와 더불어

 지긋지긋한

 밤을 보내면서.

 

 그래도 

 돌이켜 보면

 뿌듯한 순간이었다.

 꼬붕들이 죄다

 지켜보는 가운데

 제드가 내게

 술병을 

 건네고

 내가 3분의 1을

 마셔 버린 그 순간이.

 망할,

 그때는

 우리 둘한테 실패란

 없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란 말이지.

 

 나는

 삼사십 년 만에 겨우 몇 걸음

 전진했을

 뿐이다.

 그런데 제드,

 오늘 밤 아직 여기 있나 모르겠지만

 (그때 깜빡하고 못 한 말이

 있어."

 그 술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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